Jeongsu Park


<The Wall of Memory : 기억의 벽면>

Oct.18 – Nov.15. 2025


기억은 어떤 형식으로 저장되는가? 인간의 기억은 감각되는 정보를 인지하고, 감각의 정도에 따라 단기 기억, 그리고 해마를 거쳐 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 뇌라는 거대한 공간에 저장된 기억은 때때로 파편화되고, 부식되며, 충돌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 한 정보로 인출되곤 한다. 기억은 새겨질 뿐, 완전하지 않다. 


박정수는 역사적 유물과 유적이 시대에 따라 기억되는 방식을 시각적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을 한다. 한양의 도성이 지금은 고등학교의 담벼락이 되었고,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는 과거시험 답안지, 읽다 버린 신문지가 복원 도중 사용되었다. 수원화성은 한 인간의 효심으로 지어졌고, 한 때는 전쟁의 본거지였으며, 지금은 거닐기 좋은 산책로로 기억된다. 이토록 기억은 시간이라는 거친 층위에서 의미가 파편화되고, 부식되며, 덧칠된다.


이번 전시에서 박정수는 역사와 시간의 층위에 개인의 기억을 더한다. 작가는 하얀 캔버스라는 벽면 위에 개인이 직접 경험한 순간을 드로잉하고, 콜라주한다. 그리고 그 위에 당시 감각한 것들을 파편화된 이미지로 쌓아 올린다. 박정수의 작업은 거칠다. 본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재질을 시각언어로 인출하기 위해서 이며, 완전한 사실과 감각된 정보간의 충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수십 점의 석물들과 마주친다. 멀리서 보면 울퉁불퉁한 석물을 직접 캔버스에 부조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록 대상은 완전한 실재가 아님이 들통나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불완전한 거친 이미지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개인의 파편화된 기억을 엿볼 수 있다.


<빗발치던 총탄을 마주하다> 는 작가 작업의 경계를 확장시킨 작업이다. 기억에 대한 드로잉과 콜라주 위에 목격한 대상을 쌓아 올리던 이전 작업 방식에서, 대상에서 마주한 감각과 인상을 행위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수원화성 성벽의 총탄 자국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았다. 시간과 기억을 그대로 담아낸 벽면은 작가의 기억의 벽면에 그대로 새겨졌다. <빗발치던 총탄을 마주하다> 이미지 위에 강하게 내리쳐진 물리적 행위는 거친 레이어와 충돌하며 휘갈겨진다. 그러나 그 표면은 매끄럽고, 파편화된 색으로 덧칠되어 있다. 마치 파편화된 개인의 기억의 조각처럼


<성형수술을 마치며> 는 작가가 산책을 하던 중 만난 토르소이다. 가게 앞 바닥에 놓여진 비너스상은 하얀 토르소의 모습보다는 시간이 만들어낸 잔상과 충격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다. 작가는 토르소의 기능을 잃어버린 비너스가 가진 이야기를 전한다. 유물을 복원하는 과정을 언론은 ‘성형수술’로 비유하곤 한다. 마치 토르소의 의미와 모습을 되살리듯, 작가는 길 위에서 만난 작은 비너스상에 개인의 기억을 더해 복원해 냈다.


기억은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정보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각한 것들은 뇌라는 실제 물리적 공간에 새겨진다. 박정수는 실재 완전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사건과 이야기를 마주한 개인의 파편화된 기억을 회화적으로 언급한다. 이번 전시 <기억의 벽면>을 통해 나의 벽면 저 너머에 새겨져 있던 기억의 조각을 찾아보길 바란다.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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